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잔드 왕조 (문단 편집) === 건국 === 연이은 혼란을 틈타 이란과 아프간 지역 대부분은 군웅들에 의해 분할되었다. 카자르 부족의 모하메드 하산 칸은 재차 자립했다. [[타브리즈]]를 기반으로 아제르바이잔을 장악한 파슈툰계 아자드 칸, 아프간을 장악한 파슈툰계 아흐마드샤 두라니 역시 세력을 공고히 다진 터였다. 한편 서부 이란은 루르 민족의 여러 부족장들이 난립하며 제일 혼란스러웠다. 잔드 부족의 카림 칸, 바크티야르 부족의 알리 마르단 칸과 알리 푸투흐 칸이 패권을 두고 경쟁했다. 아프샤르 조의 이브라힘 샤에 의해 임명된 후 샤로흐에게도 명목상 충성하며 이스파한 총독을 맡고 있었던 바크티야르 부족-차하르 랭의 알리 푸투흐 칸이 우세를 선점한 상태였다. 이에 카림 칸과 알리 마르단 칸은 앞다투어 이스파한 진격을 원했는데, 후자가 골페아간 관문을 빼앗은 후 1750년 초엽 이스파한으로 향했다. 하지만 격되당하자 알리 마르단 칸은 카림 칸과 연합해 20,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재침했다. 하지만 이스파한에서 아불 푸투흐 칸이 완강히 저항하면서 공성전은 장기화되었다. 결국 세 칸들은 상호간에 서부 이란을 분할하자는 합의에 이르렀고, 부족한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사파비 왕조의 술탄 호세인의 외손자 아부 토라브를 '이스마일 3세'로 추대했다. 명목상으로나마 재건된 사파비 왕조 휘하에서 알리 마르단 칸은 바킬 에 다울라(국정 책임자). 카림 칸은 사르다르(총사령관)에 올랐고, 아불 푸투흐 칸은 그대로 이스파한 총독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후 사르다르 카림 칸이 쿠르디스탄 원정에 나섰을 때, 알리 마르단 칸이 아불 푸투흐 칸을 살해하면서 3두 체제는 조속히 붕괴되었다. 그후 알리 마르단 칸은 [[파르스]] 지방을 약탈했으나 키스흐트 부족의 무자리 알리에게 퇴로를 차단당하여 [[쉬라즈]]에서 월동했다. 1751년 1월 이스파한으로 돌아온 카림 칸은 [[하마단]], [[케르만샤]], [[카즈빈]] 등 서부 이란 대부분을 장악하고 알리 마르단 칸과 대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